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 아가 2:7
벨이 울리더니 그냥 사라집니다. 외로우신가 보다.
이번엔 내가 전화를 겁니다. 벨소리만 남기고 도망 가려던 사람 같지 않아..
누구라도 잡아 주기를 기다린 음성이 제 이름을 부릅니다.
이젠 기운을 차리시는가 했는데 영혼을 누르는 죽음의 두려움까지 더해 진 듯 합니다.
누구나 이렇게 되는 걸까..
홀로 된 엄마가 홀로 서기 위해 스스로와 다투던 지난 3년,
나는 한번도 그 싸움을 다독이지 않았습니다.
의지하면 할수록 힘을 잃고 쓰러지는 갈대 지팡이가 다름아닌 우리 자신임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서려다 넘어진 자국들이 엄마의 온 몸에 피꽃으로 피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더 힘을 내라고만 했습니다.
뒤엉킨 핏줄과 힘줄을 땀과 혼절로 풀어내고 나에게 생명을 내어준 엄마였음에도
주인의 사랑에 매여 질투의 땡볕 아래 추수 할 단을 거두느라
단 한번도 만족할만큼의 시선을 내게 주지 않았던 엄마를,
나는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외롭다고 말해도 괜찮아…라고 말했더라면
로뎀 나무가 되어 마음껏 울 자리를 내어 드렸더라면
오히려 우리 아버지의 따뜻한 물과 떡의 위로를 받으셨을텐데
은혜를 모르는 죄인은 바로 저입니다.
은총의 빛을 받아 새지않는 엄마의 검은 머리와
지나칠 수 없는 의미를 담은 빛나는 두 눈은 지금이라도 당장 산을 옮길 것만 같은데
추수 밭에 박혀 있던 두 다리와 온 밤을 동그랗게 말아 아버지께 드렸던 어깨는 이제 힘을 잃은 듯 합니다.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셨던 어머니,
이제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힘을 잃은 그의 두다리가 아버지의 음성을 지팡이 삼아 다시 일어나
작은 겨자씨 하나가 내어 준 무성한 가지들 아래 차려진
아버지의 식탁에 이르러 매일 밤 먹고 마시다가 평화로이 잠드실 수 있도록
사랑하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려 주옵소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말씀하여 주옵소서.